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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의 나라, 미국
초등학교 시절, 미국을 'Melting Pot', 윗 동네 캐나다는 'Mosaic' 이렇게 배웠던 기억이 난다. 'American Dream'을 외치며 많은 한국인들이 위기를 전후해 미국으로 떠났다. 다큐 매니아로서 다양한 지구촌 현상들을 보아왔지만 이번은 내가 한 때 머물렀던 곳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기사로 종종 접했던 사실을 영상으로 봐서 그런지 며칠째 기분이 영 이상하다. 학창시절 보았던 '천국의 국경을 넘다' 이후 이렇게 여운이 오래가는 다큐는 처음이다.
6편 가량의 다큐를 밤을 새서 다 보았다.
이 다큐는 감독이 3년 간을 취재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완성시기가 미국 대선과 겹치면서 개봉이 미뤄지고, 삭제된 장면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정도니.... 말 다했다. 작위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아 드라마나 영화를 즐기지 못하고, 작위적인 요소가 가미된 다큐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만큼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센서가 발달되어 있는 인간으로서 이 다큐는 오히려 일반인들에게 덜 충격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보인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안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다큐에 등장하는 ICE(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대원들에 대해서 비난하는 여론이 많은데, 개봉 후 일년이 지난 때에 관심을 가진 나는 이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1편도 채 보지 않았는데 '나치대원들의 행동이 저런 생각에서 비롯됬겠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쳤다가 괜히 무고해 보이는 대원들에게 미안해졌었는데.. 끝까지 보고 난 후엔 화가났다. 이민자들의 절규와 다소 과하게 충성스러워 보이는 대원들이 대비되면서 감상이 힘들어 잠깐 영상을 중단하고 심호흡을 했다. 드라마보다 더 한 게 현실이란 걸 잘 알고 있고, 왠만한 것엔 눈물이 나더라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보는 나인데. 무겁긴 하지만 이민법에 관심 있고, 난민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한다. 다큐를 떠나 이 사안 자체는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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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탈북민과 관련된 사연들을 보면 어떻게 21세기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멕시코-미국 국경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니. 너무 안타까운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혹자들은 불법이민자들에게 합법적으로 오라고 한다. 근데 중범죄자들을 제외하고 이 세상에 불법을 저지르고 싶어 저지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들이 오랜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새 나라를 찾을 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결코 가벼울 수 없다. 이들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사회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통계적으로 난민 수용 후 증가하는 범죄율 같은 것을 보면 쉬운 문제는 아니다. 이건 무역에 관한 것도 아니고 사람에 관한 것이라 어려운 것 같다.
"The government didn't hire me for my moral views."
영상에 나오는 한 집행관의 말이다. 난 이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때리는지 모르겠다. 많은 생각이 든다. 영상 속 대다수의 관계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들은 위의 명령을 따를 뿐이라고. 잘못이 있다면 의결권자들에게 있는 것이라고. 그들은 정녕 그들이 말하는 그들의 사소한 각각의 직무가 모여 거대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이 다큐에 나오는 이민국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였다. 집행을 넘어서 불법이민자들을 조롱하고 마치 물건을 수집하듯 하는 자들과, 말로는 자신들도 감정이 있어서 괴롭다 하지만 뒤에선 위선적인 행위를 하는 자들. 내가 보기엔 같은데.. 내가 그들을 비난할 정도로 올바르게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겠다. 어린시절 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한 데 모여 머리를 맞대면 그것이 비록 불의라 할지라도 정의가 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야할 사회라고, 공부 열심히 해서 바른 지도자가 되야 한다며 배운 기억이 있다. 불의를 정의라 믿고 따르느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느냐는 개인의 선택일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적어도 검은 색을 흰 색이라 우기는 어른은 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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