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맺어준 아빠와 딸
명절에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예고편을 봤다가 가족들이랑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다 같이 봤다.
감정표현에 인색한 우리 집 남자들도 감동적이라고 평 할 정도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다. 터키 군인 슐레이만 비르빌레이 하사와 한국의 고아 아일라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시작으로 6.25를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를 많이 봤는데 아일라와 같은 스토리는 처음인 듯하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그린 6.25 전쟁영화에 익숙해져 있는 터라 지극히 터키군의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그린 아일라가 더 신선했던 것 같다. 제작사와 감독, 배우들이 대부분 터키 사람들이다. 태어나서 첫 터키 영화였는데.. 좋았다. 한국이랑 감성이 비슷한 듯하다!
영화 개봉 후의 이야기
60년이란 긴 시간을 돌아서 슐레이만과 아일라는 만나게 되고, 영화는 여기까지 보여준다. 그 후 이야기가 궁금해 찾아봤는데.. 조금 마음이 아팠다. 이 사연이 영화화되면서 가족들과 갈등을 빚은 슐레이만하사는 고령의 나이에 이혼을 하고 자식들과도 왕래를 하지 않고 지냈다고 한다. 기사들을 보니 영화사와 가족 간에 갈등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슐레이만씨는 영화사를 신뢰하면서 나머지 가족들과 불화가 생긴 듯 하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이 후기를 쓰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지금부터다.
2017년 12월 7일, 슐레이만 하사는 94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는데.. 아내인 니멧 비르빌레이씨도 그 충격 때문인지 7시간 뒤에 사망하여 공동 장례식을 치렀다고 한다. 슐레이만씨는 살아생전에 영화 몇 편을 남기신 건지.. 가히 상상할 수 없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니멧씨와 슐레이만씨는 너무 끈끈하고 유대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다. 근데 무슨 일이 있었길래 90세가 넘어서 이혼을 하시고.. 아내분은 이혼한 전 남편이 외로울까 봐 그리 빨리 따라가신 것인지.. 너무 아름다우면서도 마음 아프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이..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이야기인데.. 실제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는 말이 맞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비단 아일라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전쟁고아와 UN군과의 스토리는 해외에서는 꽤나 알려져 있지만 한국에선 딱히 관심이 없는 듯하다. 아직까지 분단국가로서 이념 다툼이 있는 한국에서는 6.25 전쟁의 자세한 내막을 얘기하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다. 2017년에 터키에서 대흥행을 기록하고 오스카 초청까지 받은 작품이 한국에선 홍보조차 되지 않았으니.. 뭐 그 이유는 개인의 상상에 맞긴다!
이념을 떠나서 사람 된 도리로 죽음을 불사하고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한 연합군들의 고마움은 잊어선 안될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참전국 리스트를 봤는데 현재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국가들도 꽤 많았다. 왠지 감사하면서도 미안하고.. 천태만상 인간세상.. 속속들이 다 알 순 없지만 우리나라에 와 주었다는 그 사실만으로 감사하다. 전에 유 퀴즈에서 사비로 전 세계를 돌며 참전군인들의 사진을 찍어 액자를 만들어드리는 일을 하시는 분이 나왔는데..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해주셔서 감사한 마음뿐이다. 모두들 건강히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터키와 우리나라는 투르크 시대부터 '피'를 나눈 형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 해준 영화였다.
아무쪼록 이 땅에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라본다.
'슬기로운 문화생활 >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리뷰/스포O (0) | 2022.06.05 |
---|---|
영화 '경관의 피' 뒤늦은 후기/ 간만에 영화관털기 1탄 (0) | 2022.01.21 |
영화 '지아(Gia)' 리뷰 및 실존인물 지아 커랜지(Gia Marie Carangi)에 대하여 (0) | 2021.10.23 |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 후기 (0) | 2021.09.19 |
영화 '모가디슈'- 간만에 대작 영화! 다들 보세요~~ (2) | 2021.08.21 |
댓글